독일 적군파(RAF)의 탄생과 테러의 일상화 

간단한 연대기 (1967-1977)

 

1967년 가두시위 도중 베를린 자유대학 로만어과 학생 Benno Ohnesorg 이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

1968년 4월 2일 학생운동 핵심세력이었던 Thorwald Proll, Gudrun Ensslin, Andreas Baader Horst Söhnlein 등이 제국주의의 보이지 않는 테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백화점 두 군데에 폭탄 테러 감행, (사상자 없음) 안드레아스 바더를 뺀 나머지 모두 체포되어 10월 31일 3년형 선고 받음. 그러나 이듬해 가석방.

당시 베를린 학생회장이던 Rudi Dutschke를 막아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이 우익신문 빌트 지에 실림. 1968년 4월 11일 우익 테러리스트 Joseph Bachmann이 Dutschke 암살 시도, Dutschke는 대수술을 거친 후 살아났으나 후유증으로 80년대 사망.

 

슈프링어 출판사 (빌트 지가 속해있는) 건물 폭파 캠페인 시작. Ulrike Meinhof 가 주동.

 

1970년초 안드레아스 바더 체포됨. 울리케 마인호프의 정치적 캠페인에 힘입어 그해 5월 안드레아스 바더 가석방.

 

바더와 마인호프, 요르단으로 떠남. 거기서 테러리즘 교육 받음. "바더-마인호프 그룹" 창설. 테러의 일상화 시작.

 

1970년 10월부터 시작 71년 후반까지 수많은 은행강도 사건들이 발생. 나중에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RAF (Rote Armee Fraktion 적군파)를 창설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이런 방식으로 조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짐.

 

1971년 이후로 적군파에 의한 폭탄테러 시작, 경찰 측에선 바더와 마인호프 특별 체포단 조직

1972년 중반 바더를 비롯한 적군파 핵심인물들 모두 (마인호프를 제외하고) 차례로 체포, 수감.

 

수감된 적군파 중심세력, 단식투쟁 시작. 1974년 홀거 마인스, 단식투쟁 중 사망.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74년 11월 적군파는 베를린 고등법원 판사 드렝크만 납치, 총살.

 

1975년 2월 기민당 베를린 시장 후보 Peter Lorenz 납치됨. 적군파, 인질 석방 조건으로 수감 중인 적군파 세력 석방 요구. 정부는 석방 요구 수용. 페터 로렌츠 풀려남.

 

1975년 4월 25일 스톡홀름의 독일 영사관 방화 사건 발생

같은 해 5월, 바더, 마인호프, 에슬린 등 적군파 핵심 세력 모두 체포, 스톡홀름 독일 영사관 방화 사건으로 기소.

 

1976년 5월 9일 마인호프, 감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

 

1977년 4월 7일, 독일 연방검사장 지크프리트 부박, 두명의 적군파에 의해 사살됨.

 

1977년 4월 28일, 수감된 모든 적군파 핵심 세력에게 종신형 선고.

 

같은해 10월 5일 전경련 회장 Hans-Martin Schleyer 납치, 수감된 적군파 핵심 세력 석방 요구.

 

수감된 적군파 세력 면회 금지 조처.

 

10월 13일, 적군파 2명이 마요르카발, 프랑크푸르트 행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수감된 적군파 석방 및 1천 5백만 달라 요구.

 

10월 17일, 모가디슈 비행장에 테러진압단 투입. 여객기 납치극 종료. 테러리스트 모두 사살.

 

10월 18일, 적군파 수감된 감옥에서 묄러를 제외한 적군파 핵심 세력 모두 숨진 채 발견. 묄러는 칼에 온몸을 찔린 채 발견. 경찰은 집단 자살이라고 해명. 묄러의 진술과 엇갈림.

 

10월 19일, 납치된 전경련 회장, 사살된 채 발견.